“ [번역] 지평이 열릴 때 ”
[번역] 지평이 열릴 때 :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에 관하여 (by 언드라시 시프)
(c) Kevin Scanlon for The New York Times
지평이 열릴 때
글 : 언드라시 시프 / 2008년 6월
나 는 지금까지 언제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히말라야와 같은 거대한 산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많은 산봉우리들은 — 어떤 것들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다른 것들은 그보다는 낮지만 — 자연스럽게 하나의 통합체를 이루어 하나라도 떨어지면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고려 사항들도 중요하고 순전히 체력만으로도 많은 것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것들은 연주자의 감성과 지성, 정신적인 힘에 도전하는 것에 비한다면 그렇게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지금까지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 전곡을 15번이나 완주했으니(그 외에도 거의 전곡에 가까웠던 적도 다섯 번 더 있었다), 이제는 아마도 그 원정을 통해 내가 얻은 경험들을 개괄해도 될 것이다.
베토벤의 작곡 양식이 발전해 가는 과정은 두 가지 작품 군에 특별히 명료하게 잘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현악 사중주와 피아노 소나타이다. 이 작품들은 마치 두 개의 튼튼한 동아줄처럼 베토벤의 일생 전체에 걸쳐 이어져 있다. 한편으로는 작품2와 작품111을 비교해 볼 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18에서부터 작품135에 이르는 동안에, 우리는 베토벤의 작곡법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크게 진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예술은 항상 변화해 가는 과정 속에 있었다.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와 비교하여 짧지 않았던 그의 일생 동안에, 베토벤은 각각의 새로운 작품으로 신천지를 새롭게 탐험해야 했다. 피아노 소나타 분야에서 우리는 그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창의에 언제나 놀라움을 느낀다. 모든 소나타는 각각 독자적인 모습을 띠고 있고 다른 것들과 분명히 구별될 수 있는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차이점이 훨씬 더 중요하며, 해석자가 해내야 할 진짜 과제는 각각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과 특징을 드러내 보여 주는 일이다.
다른 피아니스트들처럼 나도 어렸을 때와 학생 시절에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했다. 물론 그렇게 잘 하지는 못 했다. 나는 <전원> 소나타나 작품109와 같은 몇몇 곡들에 공감했고 이런 곡들에 대해서는 친숙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열정>과 같은 다른 작품들은 너무나도 어렵고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아 보였다. 베토벤의 피아노 사운드는 매우 복잡하다. 소리의 세기에 관한 문제보다도 내적인 세기와 힘이 더 중요하고 이러한 특질들은 풍부함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베토벤의 ‘piano(여 리게)’는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에서보다 더 두텁고 풍부하다. 왜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사장조 피아노 협주곡의 시작 부분을 그토록 어려워 하는가? 확실히 거기에는 보다 단순한 사장조 3화음의 서브텍스트가 있지만, 여기서 8개의 성부는 그 어떤 경우보다도 더 정제된 균형을 필요로 한다. 바로 여기에 예술이 있고, 나는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옷들을 내가 정말로 자라서 내 몸에 맞게 되기 전까지는 입어 보려고 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나는 후기 소나타 작품110과 작품111에 대하여 너무나도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고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은 거의 종교적인 금기에 가까웠다. 나는 “어떻게 나 같은 작은 소년이 그러한 곡들에 손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연주 활동을 하면서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베토벤 주위를 멀리 돌아서 피해 갔던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1970년대에 훙가로톤 레이블을 통해 녹음했던 음반은 흥미로운 예외였다. 그때 나는 바가텔과 다른 짧은 소품들을 작곡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었던 1816년 산 브로드우드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여 녹음했는데, 이 악기는 현재 부다페스트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성장기에 얻은 어떤 경험들은 나에게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니 피셔의 이름을 언급하고 싶다. 이 경탄할 만한 아티스트는 70대의 나이에 부다페스트에서 32개의 소나타를 연주했고, 나는 꽤 운이 좋게도 그녀의 전곡 연주를 두 번이나 들을 수 있었다. 여러 해 뒤에 나는 그 당시에 내가 베토벤에 대하여 느끼고 있던 어려움을 그녀에게 이야기했는데, 그때 그녀는 간략하게 대답했다. “유감이군요, 그건 천상의 음악이거든요!” 그러다 1978년에는 말보로 페스티벌에서 루돌프 제르킨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배울 수 있었던 많은 것들 중 하나는 음악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텍스트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작곡가의 지시를 가능한 한 자세하게 살펴 보아야 하며 그것을 따라야 한다. 이런 점에 관한 한, 제르킨은 한 치의 빈틈도 없는 원칙을 지니고 있었던 위대한 대가였다. 그리고 좀 더 지나 80년대 초에는 샨도르 베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음악을 만들 때 가장 편안하게 느꼈는데, 그는 절대적인 명인이자 타고난 음악가였으며 위대한 사중주의 리더로서 베토벤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었다. 그에게서 정신적인 도움을 받아 나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는 나에게 미래에 대한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때 우리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열 곡 모두를 연주했고 녹음도 했다.
1978 년부터 2003년까지 25년 동안에 나는 우선 바흐와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에 집중했는데, 베토벤을 준비하기 위해 좋은 학습이 되었다. 그리고 40세가 되면서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체계적으로 집중하여 탐구하기로 결심했다. 그들 중 절반은 이미 내 레퍼터리 중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1년에 두 세 곡씩 새로운 작품을 익혀야만 했고, 최종적으로는 <발트슈타인>과 작품110 및 작품111에 도전해야 했다. 10년이 지난 2003년까지 상황은 이러했다. 즉, 나는 모든 소나타를 철저하게 연구했고 연주회 프로그램에 그 곡들을 처음에는 한 번에 하나씩 포함했다. 그러다 전곡을 연주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또 다른 해석이 정말로 필요한가에 대하여 내 자신에게 스스로 되물었던 것은 충분히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갖고 있던 신념은 흔히 자주 인용되는 것처럼 한스 폰 뷜로가 베토벤의 소나타를 가리켜 음악의 “신약성서”라고 일컬었던 정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음악은 매우 위대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계속 공부하고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프로그램을 짜는 방식에 관해서도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각각의 작품들은 그 길이가 천차만별이고, 이 곡들을 8회의 프로그램으로 나누는 것이 좋겠는데, 어떤 순서로 배열해야 할까? 그에 관해서는 피아니스트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연대기적 순서로 배열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배열하면 8회의 프로그램에 꼭 들어맞는다. (초기 작품이긴 하지만 뒤늦게 출판되었던 두 개의 ‘쉬운’ 소나타 작품49의 위치만은 결정하기 어려웠다. 나는 이 곡들을 작품 13과 작품 14 사이에 배치하여 세 번째 프로그램의 첫머리에 넣었다.) 작곡가가 하나의 작품 번호로 묶어서 출판했던 곡들(작품2, 10, 14, 27, 31, 49)은 그대로 함께 묶어서 배치했는데, 이런 곡들은 문맥 안에서 비로소 의미 있게 들린다. 그리하여 감상자들은 마치 위대한 소설을 읽을 때와 같이 소나타 전곡 사이클의 ‘큰 줄거리’를 논리적이고 연속적인 방식으로 따라갈 수 있다.
이 러한 연대기적 순서를 통하여 발견할 수 있는 만족할 만한 사실들 중 하나는, 좀 더 덜 알려져 있는 소나타들이 다른 유명한 곡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것은 명백히 매우 부당하다는 점이다. 또한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곡들은 바로 앞뒤에 작곡된 곡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더욱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이처럼 서로 관련이 있는 경험과 긴 여행을 통하여 배워가는 과정에 대하여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청중의 몫이고, 이러한 이유로 이상적인 감상자들 – 우리와 줄곧 함께 할 동반자들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소나타 한 곡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공부하고 분석하고 연습할 수 있지만, 진정한 성숙의 과정은 실제 연주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세부적인 것들로부터 큰 그림이 나온다. 용기와 자신감은 연주를 반복하면서 커져 가며,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자 하는 마음도 역시 그러하다. 진부해질까 봐 걱정해야만 할까? 아니다. 이 음악은 자연이 그러한 것처럼 위대하며 결코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연주할 때마다 매일 같이 달라진다.
나는 각 프로그램을 몇 차례 연주한 후에 취리히로 가서 그곳에서 연주회를 녹음했다. 톤할레의 큰 콘서트 홀은 훌륭한 레코딩 장소이며, 취리히의 청중은 식견이 높을 뿐만 아니라 매우 잘 훈련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음악회 실연을 녹음하기로 했는데, 베토벤의 음악은 연주되는 그 순간으로부터, 그리고 연주자가 위험을 무릅쓰는 동안에 나오는 아드레날린으로부터 생명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서는 연주하다가 멈출 수도 있고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서 전체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베토벤의 음악을 이처럼 너무나도 많은 이질적인 요소들도 파편화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그의 음악은 위대한 순간과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찰나를 필요로 하며, 이것은 오직 ‘라이브’ 현장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 우리가 운이 좋다면 그러한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연주회 결과가 좋지 못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 결과물을 음반으로 꼭 내 놓을 필요는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마지막 소나타 세 곡을 취리히에서 공연하고 나서 몇 달 뒤에 노이마르크트의 승마 학교 안에 있는 홀에서 아무도 없는 가운데 다시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그 밖의 다른 소나타들은 취리히에서 낮 시간에 있었던 공연을 녹음한 것이며 리허설 녹음을 이용하여 약간만 고쳤다. 우리가 얻고자 했던 것은 이 작품들에 대한 ‘유효한’ 연주였으므로 연주회를 일부러 박수 없이 진행했다. 녹음할 때에는 박수가 항상 어느 정도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 리고 나는 여러 악기를 사용했다. 두 대의 뵈젠도르퍼 임페리얼과 스타인웨이 한 대였는데, 이 피아노들은 모두 페스카라에 있는 안젤로 파브리니 社가 보유하고 있는 악기였고, 나의 피아노 조율사 로코 치켈라가 주의 깊게 조율해 주었다. 베토벤의 소나타들은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피아노로 모두 연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이 작품들은 피아노 발전의 역사를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베토벤은 그 자신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으며, 많은 피아노 제작자들이 — 빈에서만 100 명이 넘는 제작자들이 있었다 — 일하는 방식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제작자들 중 몇 명과 친하게 지냈으며 그들의 악기 제작 활동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모든 악기들은 각각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고 매우 다양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전혀 달라서 거의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스타인웨이에만 의존하고 있다. 세계화는 패션에 관해서든 요리법에 관해서든 항상 그 대가를 치루기 마련이다. 음악에서는 특별히 더 심각하다. 각각의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개별적인 음향 세계를 찾으려고 하는 대신에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타협하고 평준화하고자 한다. 좋은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훌륭한 악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유일하게 적절한 악기일 수는 없다. 과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은 다양한 악기로 연주했다. 슈나벨은 베히슈타인을, 코르토는 플레옐을, 또 다른 이들은 블뤼트너나 이바흐를 연주했다. 빈의 뵈젠도르퍼 社는 보다 더 따뜻하게 노래하는 톤을 지닌 피아노를 생산하고 있으며 빈의 전통을 최고로 가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뵈젠도르퍼로 연주할 때 특별히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베토벤의 소나타들 중 상당 수는 슈베르트를 연상하게 한다. 슈베르트는 모방자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선배였던 거장을 존경했다. 슈베르트에게 베토벤은 도달할 수 없는 모범이었으며 끊임없이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래서 나는 베토벤의 소나타들 중 절반은 뵈젠도르퍼로 연주하고 나머지는 스타인웨이로 연주하기로 했다. 감상자에게는 어느 작품을 어떤 피아노로 연주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내 경험상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인데, 스타인웨이를 좋아하고 뵈젠도르퍼를 싫어하는 편견이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또는 역사적인 악기로 또 다른 버전을 한 번 더 연주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그 모든 광채 속에서 완전한 음향 스펙트럼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수 용하는 쪽에서도 역시 편견들이 있다. 사람들은 이 소나타들을 알고 있다. —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리고 자신의 습관을 버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청취 습관들 중 많은 것들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음악 텍스트 연구에 근거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막연한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인 경우에 연주자들은 편견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 <비창> 소나타의 첫 악장에서 반복 지시는 어디에 놓여야 할까?(역주1) 올림다단조 소나타에서 통상적인 것과는 다른 페달 지시를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역주2) 그리고 이 <월광> 소나타의 제목은 베토벤에게서 비롯된 게 전혀 아니며 실제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언제쯤에야 마침내 알게 될 것인가? 우리는 <열정> 소나타의 첫 악장에서 박자와 올바른 리듬을 정말로 잘 알고 있을까?(역주3) 마지막으로,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에서는 작곡가의 메트로놈 지시를 어째서 진지하게 지켜야만 할까?(역주4) 말러는 전통 안에 가치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긴 했지만 “전통은 타락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회화 복원가들처럼 우리 연주자들도 베토벤의 작품들을 최초의 생생한 모습으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층층이 쌓여 있는 관습을 벗겨 내어 먼지와 때를 제거해야만 할 것이다.
산악인은 모든 힘을 다 해 정상에 올라갔을 때 기쁨에 넘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음악가들은 결코 정상에 도달하지 못 할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위로 올라가야만 한다. 더 높이 올라갈수록 지평선은 더 멀어진다. 그러한 순간은 우리에게 고마운 것인데,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은 풍족해질 것이다.
- 번역 : 尙憲 -
[역주]
[1] <비창> 소나타의 첫 악장은 ‘그라베(Grave)’로 시작하여 ‘알레그로(Allegro)’로 이어지는데, 헨레 에디션을 비롯하여 여러 악보에는 알레그로 파트만 반복하도록 도돌이표가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가령 루돌프 제르킨은 그라베 파트까지 통째로 반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는 이렇게 하면 이 악장의 형식이 ‘AB-AB-ACB-코다’(A:그라베, B:알레그로, C: 발전부)와 같이 되며 이러한 구조는 후기 사중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안타깝게도 베토벤의 자필 악보가 전해지지 않고 있어서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최근에는 언드라시 시프를 비롯하여 몇몇 연주자들이 이 해법을 따르고 있다.
[2] 소나타 제14번의 첫 악장에는 시작 부분에 ‘senza sordino(댐 퍼 없이)’라는 지시어가 두 번이나 나온다. 이것은 현대적 용어로 풀어서 말하면 ‘오른쪽 페달을 밟고’ 연주하라는 뜻인데, 여기서 베토벤이 의도했던 것은 이 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페달을 바꾸지 않고 계속 댐퍼를 올려 둔 채로 연주하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즉, 베토벤은 서로 다른 화음들이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몽환적인’ 음향 효과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베토벤 당대의 피아노로 연주할 때에는 좀 더 만족스럽겠지만(물론 이조차도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현대의 피아노로 연주할 때에 이러한 페달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드라시 시프는 페달을 1/3 정도만 밟고 베토벤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
[3] 언드라시 시프는 렉처를 통해 첫 악장의 박자가 12/8 박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작 부분에서 주제를 연주할 때 리듬이 좀 더 날카로워야 한다고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때 그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4]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의 제1악장에서 베토벤은 메트로놈 빠르기를 ‘2분음표=138’로 요구했는데, 이것은 극단적으로 너무나도 빠른 것이어서 그대로 따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개는 이를 무시하고 훨씬 더 느린 템포로 연주하는 일이 많지만, 언드라시 시프는 베토벤의 템포 지시에 최대한 가깝게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제3악장에서도 베토벤은 ‘8분음표=92’의 템포를 요구했지만 대개는 훨씬 더 느리고 무겁게 연주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시프는 음악이 멈추지 않고 흘러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지나치게 느린 템포에 반대했다.
이 글은 [CODA] 2008년 11월호에 커버스토리로 실렸던 글입니다. 번역 작업을 맡겨 주셨던 김효진 편집장님께 특별히 감사 드립니다. 다만, 언드라시 시프(András Schiff)의 원문을 직접 번역한 게 아니라 미샤 도나트(Misha Donat)가 영어로 옮긴 것을 토대로 하여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임을 밝혀 두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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