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라베츠의 쇼팽 녹턴 ”
여기 이반 모라베츠이라는 이름의 피아니스트가 있다. 서양 고전음악계에서는 비교적 변방인 체코 출신의 숨겨진 피아니스트이다. 지명도는 낮지만 실력은 지명도와는 반비례로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중의 한명이다.
그는 50년대부터 세인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자신만의 음악적 경력을 쌓아왔으며 흙 속의 진주와 같은 음악을 음반을 통해서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그는 위대한 마에스트로 미켈란젤리의 제자였고, 스승처럼 수정처럼 빛나고 절제된 톤으로 그만의 리리시즘을 완성하여왔다.
악독 레이블인 워너에서 몇 년전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울티마 시리즈로 그의 가장 빛나는 명반중의 명반인 쇼팽녹턴이 수입되기 전까지 나는 그가 누구인지조자 몰랐었다. 그가 연주한 쇼팽 녹턴을 구입하기 전까지 이 이름도 없는 피아니스트의 음반을 사야되나 말아야 되나 참 많이도 망설였던 것 같다.
우여곡절끝에 구입한 음반을 손에 쥐고 시디플레이어의 플레이 버튼을 눌렀을 때, 그간의 모든 나의 의구심과 불안감은 첫곡 Nocturne op.9-1 과 함께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의 연주는 불신으로 가득한 언 땅과 같은 내 마음을 녹이는 봄바람 같은 연주였다. 그는 봄을 부르는 봄바람과 같은 연주자였다. 쇼팽 녹턴에 대한 겨울과 같이 완고한 나의 교만과 권태는 사라졌다.
모라베츠의 음색은 잘 정제되어있고 투명하다 때문에 여러면에서 미켈란젤리와 유사하지만
모라베츠의 음악에는 쇼팽이 가졌음직할 병적인 섬세함이 있다. 녹턴 연주에서도 모라베츠는 악보에만 구애받지 않고 숨겨진 쇼팽의 정서를 읽어내고있다.
예측이 불가능한 자유로운 루바토, 셈세하게 빛나는 아티큘레이션 그리고 그만이 가지고 있는 소노리티. 모라베츠의 연주는 프랑소와의 병적인 환상, 루빈스타인의 절제된 미덕과도 그 괘가 다른 연주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프랑소와 연주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안개 자욱한 여름 밤이 프랑소와의 연주라면 모라베츠의 연주는 투명한 한여름 밤을 보여준다. 덥지않은 여름 밤 맑은 밤공기를 타고 은은한 달빛이 내 핏줄을 타고 흐른다. 모라베츠의 연주는 몽환적인 한 여름 밤에 남극의 투명한 겨울바다를 연상시킨다.
녹턴과 같이 잘 알려져있고 많은 연주자들이 도전한 곡을 매너리즘에 젖지 않고 연주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나만해도 수많은 녹턴 연주를 갖고 있고 들어보았지만 마음이 가는 연주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이다. 악보의 음표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연주는 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쉬운만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주하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지는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라베츠의 연주는 프랑소와처럼 개성적이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어떤 연주보다 아름다웠다. 섬세하다 못해 만지면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그의 지극히 투명한 음색은 다시 살아난 미켈란젤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무엇보다 모라베츠의 연주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의 본질을 나에게 일깨워주었다는 것이다.
베토벤이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지켜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 것처럼 모라베츠는 음악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나에게 각인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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