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람스 '발라드' , 미켈란젤리 ”

BRAHMS - 4 BALLADEN op.10
Arturo Benedetti Michelangeli

브람스 : 4개의 발라드 ( 1980년 녹음, DG 457 762-2, DG 400 043-2 )
아루트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켈란젤리의 도이치그라모폰 마지막 녹음이다. 슈베르트 소나타와 같이 수록된 이 곡은 브람스 초기의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이다. 쇼팽의 발라드 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독백과도 같은 은은한 매력을 지닌 명곡이다. 멜로디가 쏙쏙 귀에 들어오는 곡이 아닌지라, 좋아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 선율의 아름다움은 과연 브람스 답다는 생각이 나게 만드는 숨겨진 고독이 가득하다.

무엇이 그토록 불안해 브람스는 그 젊은 날에 이러한 작품을 만들었을까... 이 곡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이나 고독의 표출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흔하게 브람스답다고 부르는 숨겨진 슬픔이 가득하다. 이 곡을 들을 때면 젊은 날의 브람스의 고뇌가 느껴진다. 브람스의 고뇌를 나이 환갑의 미켈란젤리는 이전의 연주에서 보여주었던 칼날같은 연주보다 여유와 깊이로 해석하고 있다. 젊은날의 꽉꽉 짜여진 해석도 훌룡하지만 노년의 미켈란젤리는 세월을 작품의 해석에 집어넣었나 보다. 가만히 다가와 불안을 노크하고, 계속 해서 불안을 노래한다.

미켈란젤리의 공식적인 도이치그라모폰의 마지막 녹음인 이 음반을 들을 대마다 나는 왜 미켈란젤리는 라벨 '피아노 협주곡'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한 번더 녹음하지 않았을까 ?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브람스의 발라드라도 마지막으로 녹음하였다는 것에 만족해야할지도 모른다. 브람스의 매력적인 이 곡만이 미켈란젤리의 유일한 DG 브람스 녹음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리의 브람스 녹음은 변주곡 몇곡이 있지만 다른 음반들처럼 조악한 음질은 어디 내놓아도 뒤떻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EMI의 초기녹음들 정도면 그래도 훌룡한 편이다. 미켈란젤리의 음반은 디지탈 녹음이라도 40년대 녹음만도 못한 음반이 너무 많다.)

미켈란젤리는 그 위대한 음악성을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실연으로 보여주었을뿐, 나 같은 사람들은 그저 그가 녹음한 음반만 쳐다보고 그의 위대함을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좋은 음질의 음반들은 필수이지만,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그나마 건진 이 귀중한 브람스의 음반을 들을 때면 감사의 마음을 가지려고 애써본다.

브람스의 젊은 날의 불안과 고독이 노년의 미켈란젤리에 의해 우리에게 다시 다가온다. 카첸의 단단한 음색도, 소콜로프의 여유로움과도 다르다. 그것은 삶의 종착역에 들어선 노대가의 독백과도 같다. 그래서 이 음반은 고독한 천재의 독백이며, 미켈란젤리의 백조의 노래이다. 서두르지 않는 템포 그 속에서 뚜렷히 살아져 전해오는 악상... 브람스가 무엇을 의도하였는지 미켈란젤리는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 같다.

그러면서 미켈란젤리는 내게 말한다. "나의 삶도 고독하였노라고..."

About this e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