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벨 : 피아노 협주곡 (EMI, 1957년 녹음) ”

사용자 삽입 이미지
Ravel : Piano Conerto In G

라벨 : 피아노 협주곡 (EMI, 7243 5 67258 2 9 : 1957년 녹음)

라벨의 이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을 논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미켈란젤리의 유명한 음반이다. 미켈란젤리가 EMI에 남긴 음반중 슈만의 카니발과 더불어 가장빛나는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을 녹음 할 당시 미켈란젤리의 나이가 불혹을 앞둔 나이이지만 건반에 대한 통제력이나 음악적 성숙함은 이미 경지에 올라섰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녹음이다.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피아노로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같다는 표현으로 미켈란젤리의 해석을 표현하였다. 이 표현처럼 적절하게 이 협주곡의 2악장을 묘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완벽한 기교도 중요하지만 기교를 넘어서는 것은 어떻게 연주되느냐라는 것을 느끼게된다. 미켈란젤리는 완벽한 기교 아래 이곡을 정복해 나가지만 기교를 넘어서 존재하는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어느 누가 이처럼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이곡을 연주해 나갈 수 있을까...


미켈란젤리는 마치 피아노라는 악기를 통하여 나즈막히 노래하는 것 같다. 지극히 섬세하면서도 그 흐름이 자연스러워 어색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루바토. 얼름처럼 순수하게 절제된 피아노 소리.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처럼 맑고 순수한 피아노 소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물론 이 음반에 장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59년이라는 녹음연도와 스테레오 초기녹음이라는 한계, 잘 알려지지 않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분명 이 음반의 한계를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짐머만과 블레즈가 80년대 녹음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과 비교하여보면 모든 것이 더욱 열등해 보인다. 짐머만의 녹음에 비해 부자연스런 피아노 소리, 답답한 음향, 부족한 오케스트라의 뒷받침은 더욱 드러난다. 무엇하나 짐머만의 세련된 음반에 비해 나은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점을 덮고도 남는 아우라가 미켈란젤리의 녹음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미켈란젤리의 불세출의 연주과 해석이다. 현재 녹음에 비해 비교적 열악한 음질이나 빈약한 오케스트라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음반은 한 예술가의 위대한 숨겸을 담고 있는 것이다. 웬만큼 피아노를 칠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곡의 2악장을연주할 수 있겠지만, 어느 누구도 미켈란젤리처럼 2악장을 연주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것이 이 음반의 수많은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50여년 동안 많은 사람들사이에서 최고의 음반으로 회자되는 까닭이 아닐까?






 


About this entry